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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74'이명학 동문 관련 세계일보 기사! 1,587 Hit
Name   부운영자 1   2009/11/17

 

[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38> 이명학 성균관대 사범대학장

학문으로 스승이 되고 행실로써 세상의 모범이 되다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간혹 고민했다. 진정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은 누구인가. 저술활동을 통해 소통하는 학자들이 관심의 주요 대상이지만, 현장에서 ‘앎’을 적극 실천하는 이들에게도 시선을 두고 싶었다. 그러던 중 대학가를 거닐고 학자들을 만나면서 접하게 된 이명학 성균관대 사범대학장의 소통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한문교육과 교수인 그의 방식은 놓치고 싶지 않은 ‘보물’이었다.

그래도 순서는 필요했다. 소중한 보물을 알려준 성대 교직원들에게 우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러고 나서 사범대 학장실로 이 교수를 찾기로 했다.

서울 율곡로의 붐비는 차량을 피해 헌법재판소와 감사원 길을 거쳐 성대 후문을 이용했다. 잎 떨어낸 가지 사이로 잔뜩 기세가 오른 가을바람이 기자를 마중나왔다. 500년 조선 유생이 거쳐간 명륜동 성균관. 성균관을 모태로 하고 있다는 성대에는 젊음과 함께 낙엽이 바스락거린다. 잔뜩 힘을 잃은 젖은 낙엽 위로 청춘이 경쾌하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간헐적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낯선 이국에서 처음으로 겨울을 맞이하는지 연방 추위를 타는 기색이다.

오르막이 심한 이곳 교정도 후문에서 내려오자 걷기 힘들지 않다. 낮은 곳에서 올라가는 것은 힘들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오기는 쉬운 게 세상 이치다. 이 가르침을 얻으리라고는 인터뷰 직전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학장실 자리에 앉자마자 경구가 눈에 띈다. ‘학위인사 행위세범(學爲人師 行爲世範)’. 이 학장에게 물어 뜻을 정확히 풀이해 본다. “학문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돼야 하고 행실은 세상의 모범이 돼야 한다.” 이 문장에서 사범(師範)이 나왔나 보다. 곱씹어 볼수록 뜻이 깊어진다. 학문과 행실로 모범이 되려는 이들이라면 기꺼이 스승으로 삼아도 될 성싶다. “사범의 뜻을 모범이 되는 스승 정도로 알고 있었다”고 고백하자 “대개 한국인들이 그리 생각할 것”이라며 기자의 무식을 책하지 않는다.

“중국 베이징대에서 머물 때, 그곳 사범대 비석에서 이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이 문구를 한국의 교정에서도 접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학장실에 걸어놓았습니다. 신입생들에게도 좌우명을 적게 해 ‘사명패(使命牌)’를 만들고, 한켠에 이 경구를 써서 돌려주었지요.”

학장실에는 학생들의 다짐을 기록해 놓은 글귀도 눈에 띄었다. 사범대의 심다슬 학생은 “나는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인성적으로 존경받는 스승이 되고, 나의 제자 역시 그러한 모습으로 키워 나가는 유능한 사람이 되겠다”는 글귀를 남겼다. 이쯤 되면 인성교육이 따로 필요 없다. 기능 만능주의 시대에 스스로 내린 자각에다가 남의 삶에도 진지하게 공헌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서다.

‘교수’라는 단어에서 ‘스승’보다는 ‘학자’와 ‘연구자’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시대에 이 학장의 믿음과 가르침들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오래된 한지에 먹물이 저항 없이 스며들듯, 그의 말에 빠져들었다.

“스승은 혼자 가서는 안 됩니다. 오를 수 없는 경지에서 제자의 목표가 돼 주어도 좋지만, 반 발자국 앞서는 것도 좋아요. 그 과정에서 제자가 고민하고 깨닫게 됩니다. 일반인과 만남도 똑같습니다. 대중이 제대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요.”

이 학장은 1994년 국내 방송으로는 처음으로 EBS에서 단행본을 만들어 ‘교양 한문’을 강의했다. 인터넷 시대인 지금도 그렇지만 15년 전에도 방송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문을 강의하는 것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행본 교재 5000부가 판매되는 등 일반인의 한문 수요는 생각보다 많았다. 학생들은 전공서적을 읽기 위해서, 일반인들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한문을 알아야 한다. 한문 교육에 한 세대를 투자한 이 학장의 지론이다.

“우리말을 잘하기 위해서도 한자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간 한자를 읽고 해석하는 데 사회적으로 소홀했던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문자가 쉬워지면 문화의 수준도 낮아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유념해야 합니다.”

스승의 자세를 논하고 한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가 질문을 던진다. “박 기자는 ‘궤도’와 ‘괴도’, ‘애’와 ‘얘’를 발음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성세대는 말과 글로 궤도와 괴도를 구분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그렇지 못해요. 세월이 흐르면 구분 못 하는 세대가 사회의 다수를 차지할 거예요. 시간을 놓치면 안 됩니다.”

그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묻어난다. 간절함은 질책으로 이어진다. “언론인들의 책임도 커요. 우리말을 사랑하는 것은 좋아요. 그러나 고사성어 등을 제대로 안 쓰니,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점점 우리말을 제대로 쓰지를 못해요. 한자를 통해야 쓸 수 있는 우리말이 많거든요.”

한글전용 방침에 부응하면서 한자 교육도 강화하자는 주장이다. 그는 “한글 창제 이후에도 한자는 사용됐다”며 “한글과 한자는 수레의 양바퀴와 같아서 함께 사용할 때 그 장점이 배가된다”고 설명한다.

한자 공부는 교육적으로 유용하다는 설명도 보탰다. “1973년 일본에서 이뤄진 연구 결과를 보면 히라가나 등 일본어는 우뇌에서 인식하고, 한자는 좌뇌로 인식한다고 해요. 한문 공부는 좌·우뇌가 골고루 발달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셈이지요.”

그의 저서 ‘한문의 세계’에는 동양의 문화전통과 가치관 공감을 돕는 한문 풀이가 가득하다. 몇 가지 추려보면 이렇다. ‘한라산(漢拏山)’은 ‘은하수(銀漢)를 당길(拏)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한나산’으로 읽어야 하나, 활음조현상으로 ‘한라산’으로 읽는다. ‘슬하(膝下)’는 무릎 아래라는 뜻으로, 자신의 자식을 일컬을 때 사용한다.

그렇다고 그가 한문 전도사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오히려 한국어 전도사라고 하는 게 타당하다. 그는 학장이 된 뒤에 2007년부터 올해까지 중국에서 한국어 전공 한족을 대상으로 ‘성균한글백일장’을 열었다. 학교를 설득해 우수 입상자에게는 성대 대학원에서 장학금으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순전히 사범대학장인 그의 자발적인 의지로 백일장 대회가 시작됐다. 어린 시절 경험에다가 학자로서의 의무감이 더해진 결과였다.

“한류(韓流) 열풍이 여전할 때 학장이 됐습니다. 어린 시절 홍콩 영화를 보며 중국어 공부를 하던 때가 떠올랐지요. 그러나 홍콩 영화의 인기가 시들어지자, 중국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졌지요. 한류 붐도 그렇게 사라져서는 안 되지요. 한글을 알리고, 우리말을 사랑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대회는 계속 열 생각입니다.”

중국만이 아니다.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도 ‘성균한글백일장’을 열어 한글과 한국을 적극 알렸다. 대회를 치를 때마다 수천만 원이 필요하지만 부족할 때가 많다. 이럴 때 이 학장은 주저하지 않고 사비를 사용한다.

그의 관심 지점은 이제 새터민과 다문화가정 자녀에게로 향하고 있다. 이들과 제자들을 자매결연으로 연결하고, 백일장을 개최하며 우리 사회의 사랑을 베풀어주고 있다.

열린 가슴과 세상에 대한 뜨거운 그의 애정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교육자로서 가진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겠다’는 철학 덕택일 것이다.

“한문을 배우는 게 우리 문화의 동질성을 확인하자는 차원인 것처럼, 우리말을 알리는 것은 세계와 소통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교육은 기능적으로 우수한 인력을 배출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사는 데 보탬이 되도록 눈길을 줘야 합니다.”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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